바다와 산의 수려한 경치를 바라볼 수 있는 상관(上關) 찻집
조류가 빠른 상관(上關)은 숙련된 항해기술이 필요하였다. 조선통신사 선단과 호위선단은 매회 바람과 해류의 흐름을 보아 임기응변으로 항로를 선택하였으나 긴급피난지로 이용한 항구는 적간관(赤間關)-상관(上關) 사이의 15개소를 넘는 항로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알려주고 있다.
조선통신사 선단은 9월 2일 오후8시 상관(上關)에 입항하였다. 부사 임수간(任守幹)의 일본일기에 의하면 전후좌우의 모든 호송선의 아름답게 빛나는 등화(燈火)가 무수히 바다를 메우고 있었는데 참으로 장관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오후 8시 후 상관(上關)에 정박하고 숙관(宿館)으로 들어갔으나 이곳은 나가토(長門) 태수의 별장으로 바다와 산의 경치가 더없이 절경이다. 상관(上關)은 모리가(毛利家). 추본번(萩本藩)의 직할지로 참근교대(參勤交代)의 서국대명(西國大名)과 유구사절, 네덜란드 상관장(商館長)의 강호참부(江戶參府), 북해도의 다시마를 운송하는 선박들의 출입으로 북적거렸다.
설치된 상관(上關) 별장은 해상의 본진이자 영빈관이다. 통신사의 숙관(宿館)은 지형을 이용하여 동편에 세워져 있고 암국번(岩國藩) 무사, 대마번 무사의 숙소는 높은 곳을 차지하고 있다. 주민들은 통신사의 왕복기간 동안 집을 제공하기 때문에 산중에 임시로 가건물을 세워 생활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였다.
'상지관어차옥사구지도(上之關御茶屋仕構之圖)'에 의하면 통신사가 상륙하기 위한 당인교(唐人橋)가 있고 그 끝에 붉은 색칠을 한 잔교(棧橋), 찻집, 장옥(長屋), 도구창고 등의 부속건물이 그려져 있고 산으로 둘러 쌓인 양측에는 찻집의 중관(中官), 하관(下官)의 건물이 줄지어 있다. 정사, 부사, 종사관의 찻집은 계곡의 깊숙한 곳에 있으며 높은 곳에서 바다와 산의 수려한 경치를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3,000평의 부지를 가진 2층의 찻집에는 왕복 11차례 중 제2차(1617년) 때의 선상에서 머문 것을 빼면 모두 상륙하여 머물렀다.